작업노트 (김 선자 Kim seon ja)
나는 범죄자도 성형이나 외과의사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인체를 가위로 잘라 해체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하나의 개념인 « déconstruction »(해체)와 관계된다. 나는 이렇게 잘라진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 recomposition »(재구성) 작업을 한다. 이 조각들은 서로 다른곳에서 집합, 접합된 것으로써, 이것은 두 다른 문화의 복합에서 또다른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는 나의 정체성이다. 따라서 이 조각들의 접합은 선과 공간의 구분짓기와 같이 한국과 프랑스라는 한정된 공간의 차별성을 나타내지만, 또한 그 경계를 모호하게도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의 앙상블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다. 나는 이 두 다른 세계를 하나의 총합된 방식으로 표현하여 하모니를 만들고 그들이 갖는 교차점을 찾고자 한다.
여기서 보여지듯이 나의 작업은 한국에서 공부한 기법과 더불어 프랑스 현대미술의 방법론적 결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예를들면 Matisse, Hantaï, Buraglio, Viallat 등.
이것은 순수회화이며 추상화다. 또한 드로잉으로 된 작업이고 현대미술이다. 이것은 비정형화된 형태이며, 모노크롬 작업이다. 이것은 때론 표현주의적으로, 때론 미니멀적인 느낌으로도 나타난다.
우선 나는 큰 규격의 투명 폴리에스테르지를 바닥에 길게 깔아놓고 그 양면에 아크릴물감과 붓으로 마티스나 고갱의 인체뎃생 작품을 리듬적이고, 민첩하게, 자유로운 제스츠로 드로잉하고, 겹쳐 그린다. 그리고 어떤 형태나 규격에서는 벗어나 가위로 날렵하고, 자유롭게 자른다. 잘려진 조각을 여기저기서 모아 추상적이며 독립적인 방법으로 재배열한다. 따라서 처음의 구상적 인체뎃생은 더 이상 찾아볼수 없고 반투명 폴리에스테르지 표면의 여백과 함께 생기있는 선과 공간의 하모니로 나타난다. 따라서 작업의 동기는 인체라는 특권을 부여받았지만 인체는 작품의 주제가 아닌 하나의 모티브다.
여기서 나는 붓, 물감, 선, 드로잉, 오리기, 붙이기 등, 조형예술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재료와 방법을 도입하여 독창적인 표현을 하고자 한다. 또한 원시적이고 서툴은듯한 제스츠나 그 특징들은, 어떤 의도나 관념적 제약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그 결과는 더 강하며, 힘찬 에너지와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만 4년간(2010-2013)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푸투나에 거주하면서 그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받았다.
폴리에스테르지라는 반투명 재질이 갖는 현대적인 감각과 섬세함으로 « Less is more »를 실현한다. 이것은 다이나미컬한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명상적인 활기로 표현된다. 스크린 화면같이 밟고 활기찬 투명함에 가벼움과 단순함, 겹쳐놓기와 양면사용으로 드러남의 효과는 깊이감과 다양성을 주고, 선명하게 잘려진 조각들의 흔적과 드로잉의 곡선들은 엄격함과 부드러움, 긴장감과 자연스러움 이라는 대조를 이루면서 좋은 앙상블을 만든다. 또한 이 조각들은 서로 살포시 올려 놓은듯, 입체감을 주는 동시에, 마치 부서질듯 허약한 섬세함과 가벼움을 준다.
구성과 앙상블은 지속적인 과정과 방법에서 재-결합으로 회복된 것이다. 이 조각들은 기이하게도 서로 유사성을 가진, 우연한 절차안에서 어떠한 필연적 우연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앙상블은 미스테르하고 기하학적 특수한 성질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써 그들의 친밀감은 어떤 강인함과 함께 자유로운 선과 공간의 하모니를 이룬다.
따라서 이것은 해체된 조각들의 결과물이며, 이들은 벽 위에서 춤추듯 율동적이고 때론 간격을 좁히고 죄여 다이나믹한 느낌과 팽팽하게 당겨지기도 하는 « all – over »의 그것이다. 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선과 공간의 반복은 마치 벽의 표면으로 부터 떠 있는듯하며 또는 그 공간에 완전히 내포되어 한계가 없는 또 다른 무한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 각각의 작품들은 길 위에 세우진 폿말 구실을 하지만 나는 그 끝을 보고자하는 것은 아니다.